토스카나와 움브리아 사이, 호수에 잠긴 시간을 걷다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조용한 이탈리아가 어디 없을까?”
이 질문이 제 이탈리아 여행의 방향을 바꿨어요.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물론 아름답죠. 그런데 어쩐지 매번 붐비는 관광지 속에서 피로해지는 자신을 느꼈어요.
그러다 우연히 지도 위에서 만난 이름, Castiglione del Lago.
‘호수 위의 성채 마을’이라는 별명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그곳을 목적지로 정했어요.
그리고 말할 수 있어요.
이 마을은 조용하지만, 잊히지 않을 감동을 주는 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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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를 가로지르다 – 가는 길부터 힐링
피렌체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마을. 렌터카 창밖으론 굽이진 포도밭과 은빛 올리브나무, 그리고 중세 마을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어요. 운전하는 동안 라디오에서 잔잔한 이탈리아 발라드가 흘러나오는데, 정말이지 영화 한 장면 같았죠.
이 마을은 움브리아 주에 속하지만, 거의 토스카나와의 경계에 있어요. 그래서 그 특유의 와인향 가득한 평화로운 분위기와, 중세의 고요함이 공존해요.
성채 안의 마을 – Rocca del Leone
카스틸리오네 델 라고의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Rocca del Leone, 즉 ‘사자의 성채’예요. 이 성채는 13세기에 지어졌고, 아직까지도 그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중세시대 방어 요새의 구조가 그대로 보이고, 좁고 높은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을 전체와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는 파노라마 전망대에 도착해요.
전망대에서 본 트라시메노 호수(Lago Trasimeno)… 저는 그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그 위에 반짝이는 햇살, 그리고 주변 마을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눈앞의 풍경은 조용한데, 마음속에선 작은 파도가 계속 일렁였어요.
호수 위를 걷는 듯한 길
마을 전체가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건 아마도 호수가 마을을 에워싸고 있어서겠죠. 성채에서 내려와 마을을 걸어 다니면, 곳곳에서 물빛이 보여요.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렁이고, 그 위로 갈매기가 한가롭게 날아요.
특히나 해 질 무렵, 마을 끝자락의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면 말이 필요 없어요. 붉게 물든 호수와 하늘, 그리고 그 속에서 천천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 그 모든 게 하나로 섞여, 나도 모르게 ‘아,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고 있구나’ 느끼게 돼요.
한 끼의 위로 – 현지 레스토랑의 따뜻한 점심
걷다 보니 출출해져서 마을 중심 광장 근처의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갔어요. 테라스에 앉아 메뉴판을 펼치니 낯익은 파스타 이름들 사이로, ‘Tagliatelle al cinghiale’ (야생 멧돼지 라구 소스)라는 메뉴가 눈에 띄었어요.
솔직히 처음엔 망설였어요. 멧돼지를 먹는다고? 그런데 이곳의 특산 요리라고 하니 용기 내서 주문했죠.
그리고 한입.
와, 이건 뭐… 진심으로 말문이 막히는 맛이었어요. 고기는 부드럽고 육즙 가득했고, 면은 탱글탱글. 거기에 가볍게 곁들인 지역산 레드와인이 딱이었어요. 정말이지, 그 한 끼가 제 여행 전체를 위로해줬어요.
소박한 상점과 예술가의 거리
성채를 따라 이어진 골목에는 현지 장인이 만든 세라믹 그릇, 손뜨개 인형, 수제 비누, 와인과 치즈 등을 파는 작은 상점들이 있어요.
그 중에서도 한 화방에 들어갔을 때, 마음이 확 열렸어요. 연세 지긋한 작가 한 분이 직접 캔버스에 붓을 움직이고 계셨고, 옆에선 그의 딸로 보이는 분이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제가 “너무 아름답다”고 말하자, 작가님은 조용히 웃으며 “Questo è il mio cuore”라고 하시더라고요.
“이게 나의 심장이에요.”
마을 사람들과의 짧은 인사
이 마을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사람들의 태도예요. 관광객이 많지 않아 그런지, 모든 이들이 여유롭고 따뜻해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부온 조르노!”라는 인사와 함께 눈을 마주쳐주고, 시장에서는 “이거 먹어봐요, 맛있어요”라며 올리브 한 알을 쥐여줘요.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마치 “이곳은 당신도 우리 마을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죠.
사진보다 더 예쁜 기억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건,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그 감정을 다 담을 수 없다는 점이죠.
카스틸리오네 델 라고도 마찬가지예요. 사진으론 담을 수 없는 바람, 소리, 사람들의 미소, 햇살의 온기…
그래서 전 이 마을의 사진을 폴더에 저장하면서도, 제일 아끼는 건 그날의 감정이 담긴 일기였어요.
“여기선 내가 정말 ‘쉰’ 것 같아.”
짧지만 강렬한 한 문장이었죠.
여행 팁
- 위치: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 트라시메노 호수 서쪽
- 가는 법: 피렌체 또는 시에나에서 렌터카 / 페루자에서 기차도 가능
- 추천 일정: 당일치기 가능하지만, 여유 있으면 1박 추천
- 숙소: 성벽 안 B&B 강추! 아침 햇살에 깨어나면 영화 같아요
- 특산물: 멧돼지 라구 파스타, 올리브 오일, 지역산 레드와인
- 특별한 포인트: Rocca del Leone 성채 / 호숫가 벤치 / 저녁 노을
진짜 이탈리아를 원한다면
이탈리아엔 수많은 아름다운 도시가 있지만, 카스틸리오네 델 라고처럼 조용히 마음을 울리는 곳은 흔치 않아요.
사람이 적어서 더 좋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에 더 깊이 스며드는 곳.
관광객의 소란 대신, 종소리와 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곳.
혹시 다음 여행에서 조용하지만 잊지 못할 풍경을 원하신다면, 이 마을을 꼭 리스트에 넣어보세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이탈리아는, 때로 로마나 베네치아보다 이런 ‘숨은 보석’ 안에서 더 아름답게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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