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속을 걷는 듯한 하루, 시간 여행 그 자체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조금 넘는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오비두스(Óbidos). 솔직히 말하면 저는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할 때 이 마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유명한 건 포르투, 리스본, 신트라 정도잖아요? 그런데 포르투갈을 여행해본 친구가 단호하게 말하더라고요.
“오비두스 안 가면 진짜 후회해. 거기 성벽 안은 완전 다른 세상이야.”
그 말에 이끌려 별 기대 없이 떠난 오비두스. 그런데 웬걸요. 저는 거기서 하루 동안 중세 시대의 연인처럼 걷고, 먹고, 웃으며,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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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두스로 가는 길 – 예쁘게, 짧게
리스본에서 버스나 차로 약 1시간 15분. 이동 시간도 짧고, 풍경도 한적해서 졸다가 도착했어요.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건 돌로 된 성벽. 진짜 ‘성곽 도시’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확 와닿더라고요.
성벽은 단지 옛날 유적이 아니에요.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어요. 성문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었어요. 차가운 돌길, 하얗고 낮은 건물, 알록달록한 꽃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타 소리… “이곳은 낭만 그 자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성벽 위를 걷다 – 심장이 쿵쾅대던 순간
오비두스에서 꼭 해야 할 일 1순위는 뭐니 뭐니 해도 성벽 걷기!
입구 쪽에서 올라가면, 좁고 아슬아슬한 길이 펼쳐지는데, 양옆엔 난간도 없어요. 무서웠냐고요? 솔직히 좀 무섭긴 했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건 전망이 주는 짜릿함과 감동이었어요.
왼쪽으론 붉은 지붕의 마을 전경이 한눈에 보이고, 오른쪽으론 포르투갈 시골 풍경이 한없이 펼쳐지죠. 그 순간 바람이 살짝 불어오는데, 왠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팁 하나 드리자면,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에 가는 걸 추천해요.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은 오비두스는 정말이지… 그림이에요.
골목, 골목, 또 골목 – 걸을수록 빠져드는 매력
성벽 아래는 정말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이어져 있어요. 하얀 벽에 파란 줄, 노란 테두리가 칠해진 집들. 창문마다 색색의 꽃이 피어 있고, 골목 사이사이엔 작은 상점과 서점, 카페들이 숨어 있어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작은 독립 서점이었어요. 손때 묻은 포르투갈어 책들과, 낡은 타자기, 그리고 한켠에서 고양이가 자고 있었어요. 카운터에 있던 주인 아저씨는 느릿느릿한 영어로 제게 책 한 권을 추천해줬고, 저는 고맙다며 엽서 몇 장과 함께 책을 샀어요. 여행 중 그 책은 읽지 못했지만,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 책의 냄새와 마을의 풍경이 떠올라요.
초콜릿 축제 그리고 ‘진자(Ginja)’
제가 갔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오비두스에서는 매년 봄에 **초콜릿 축제(Óbidos International Chocolate Festival)**가 열려요. 성벽 안 마을이 초콜릿 천국이 된다고 하니, 단 거 좋아하는 분들은 꼭 맞춰서 가보세요.
대신 제가 경험한 특별한 맛은 바로 **‘진자(Ginja)’**였어요. 체리로 만든 리큐어인데, 작고 귀여운 초콜릿 컵에 담겨 나와요. 마시고 컵까지 한 입에!
아, 이게 바로 여행의 맛이구나 싶었죠. 진자는 마을 곳곳의 상점에서 팔고 있고, 한 잔에 1유로 정도밖에 안 해요. 부담 없이 기분 낼 수 있는 최고의 로컬 술이에요.
오비두스의 중심, 산타 마리아 교회
마을의 중심에 있는 **산타 마리아 교회(Igreja de Santa Maria)**도 잠깐 들러볼 만해요. 외관은 수수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고요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아줄레주(타일)가 여행의 짧은 쉼표가 되어줘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조용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기 딱 좋았어요. 때마침 결혼식 준비를 하는 커플도 봤는데, ‘이런 마을에서 결혼하는 건 정말 로맨틱하겠다’ 싶었죠.
오비두스의 한 끼 – 소박하지만 정갈한 맛
여행의 피로가 슬슬 몰려올 때쯤, 성벽 안쪽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어요. 메뉴는 단순했지만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포르투갈식 전통 가정식이었어요.
저는 ‘바칼라우 브라스(Bacalhau à Brás, 대구와 감자, 달걀을 볶은 요리)’와 하우스 와인을 주문했는데, 진짜 엄마 밥 같은 정겨운 맛이었어요. 할머니가 해주셨을 것 같은 순한 간과 정성 가득한 플레이팅. 소박하지만 진심이 느껴졌어요.
오비두스에서의 하루가 끝날 무렵
해가 지기 시작하면, 오비두스는 또 다른 색으로 물들어요. 돌길 사이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 성벽 위에 앉아 바라본 붉게 타오르는 하늘. 사람들은 조용히 와인을 마시고,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뛰어놀고.
저는 성문 바깥으로 잠시 나와, 마을 전체를 바라봤어요. 그리고 느꼈어요.
“이 마을은 나를 아주 잠깐, 다른 시간 속에 데려다 줬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렇게 조용히 ‘지금’에 집중할 수 있었던 여행은 오랜만이었어요.
여행 팁
- 위치: 포르투갈 리스본 북쪽 약 85km
- 가는 방법: 리스본 Campo Grande 터미널에서 버스 (Rodoviária do Oeste) – 약 1시간 15분
- 추천 일정: 당일치기도 가능하지만, 1박 2일 추천! 성벽 안의 숙소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해요.
- 추천 계절: 봄/가을. 초콜릿 페스티벌(4월경), 크리스마스 시즌도 유명!
- 소요 예산: 숙박 제외 1일 약 30~50유로면 충분
‘나만 알고 싶은 마을’이 있다면
오비두스는 누가 봐도 예쁜 마을이지만, 그 예쁨이 꾸며진 게 아니라 진심에서 나오는 느낌이에요. 저는 그게 좋았어요.
관광객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점.
그래서 여행자에게도 더 따뜻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어요.
혹시 조용한 여행, 감성적인 풍경, 그리고 중세적인 로맨스를 꿈꾸신다면. 오비두스는 분명,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할 포르투갈의 진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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